AI시대, 인간다움이 중요해진 이유는
어느 가을날 오후, 나는 카페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고, 그의 뒤에서 젊은 여성이 급하게 걸음을 늦추었다. 여성은 노인을 추월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저 노인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때때로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배려였고, 노인은 그 배려를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목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복잡한 문제를 풀고, 예술작품을 창조하기까지 한다. 어쩌면 이 글도 AI가 썼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AI가 아무리 정교해진다 해도, 저 여성이 보여준 순간적인 공감과 선택, 그리고 그것을 목격한 나의 울림을 완전히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데이터나 패턴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무게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능력, 그리고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값진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인간다움의 본질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불완전함에서 나온다. 우리는 실수하고, 후회하고, 망설인다. 중요한 말을 하려다가 목이 메이기도 하고, 옳은 선택을 알면서도 두려움에 다른 길을 가기도 한다. AI는 최적의 답을 계산해낼 수 있지만, 최적이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다. 엄마가 배고픈 자식에게 "먹었다"고 거짓말하며 자신의 몫을 덜어주는 순간, 그 선택은 어떤 알고리즘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또한 인간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다. 우리는 같은 사건을 경험해도 각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첫눈이 내리는 날,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기온이 낮아진 기상 현상일 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르는 슬픔의 순간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연인과의 첫 데이트를 떠올리게 하는 설렘의 순간이다. AI는 "첫눈"이라는 단어와 관련된 감정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지만, 개인의 삶 전체가 농축된 그 고유한 감정의 결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인간다움은 또한 모순을 품는 능력이다. 우리는 동시에 강하고 약하며, 이성적이면서도 감정적이고, 개인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일부다. 자식을 꾸짖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아픈 부모,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은근히 질투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우리. 이런 복잡하고 때로는 모순된 감정들을 동시에 경험하고, 그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 그것이 인간이다. AI는 논리적 일관성을 추구하지만, 인간은 모순 속에서 살아가며 그 모순을 통해 성장한다.
무엇보다 인간에게는 죽음이 있다. 우리는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고,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유한성이 우리의 모든 선택에 무게를 더한다.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AI에게는 무의미하지만, 인간에게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질문이 된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가족의 손을 잡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에는 삶 전체의 의미가 담겨있다. AI는 "사랑한다"라는 단어를 출력할 수 있지만, 곧 사라질 존재로서 남기는 그 말의 무게를 가질 수는 없다.
인간은 또한 기억하고 망각하는 존재다. 우리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기억은 희미해지고, 어떤 기억은 왜곡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기억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첫사랑의 얼굴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도, 그때의 설렘은 가슴 한켠에 남아있다.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음식의 정확한 맛은 재현할 수 없어도, 그 따스함은 평생을 간다. AI의 완벽한 데이터 저장과 달리,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은 감정과 뒤섞여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몸이 있다. 우리는 단순히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숨쉬고, 배고프고, 피곤해하는 육체를 가진 존재다. 비 오는 날의 축축한 느낌, 뜨거운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포옹에서 느껴지는 체온. 이런 신체적 경험들은 우리의 사고와 감정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 AI는 감각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지만, 몸으로 세상을 느끼고 그것이 의식과 하나가 되는 경험, 그것은 인간만의 것이다.
인간다움은 또한 침묵 속에 존재한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전한다. 슬픔에 잠긴 친구 옆에 그저 앉아있어 주는 것,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함께 노을을 바라보는 것. 이런 순간들에는 언어를 초월한 교감이 있다. AI는 언어로 소통하지만, 언어가 닿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깊은 연결을 이해할 수 없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것, 설명할 수 없지만 느껴지는 것, 그것이 인간 관계의 본질이다.
무엇보다 인간은 변화하는 존재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경험을 통해 배우고,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관계를 통해 변화한다. 한때 두려워하던 것을 극복하기도 하고, 확신했던 신념을 바꾸기도 한다. 이런 끊임없는 변화와 성장의 과정 자체가 인간다움이다. AI는 학습을 통해 개선될 수 있지만, 실존적 위기를 겪으며 자아를 재정의하거나, 사랑을 통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경험,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AI가 흉내낼 수 없는 인간다움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에서 나온다. 실수하고, 상처받고, 두려워하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것. 논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면서도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 한정된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고, 불완전한 기억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몸으로 세상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이 모든 것이 인간다움이다.
그러니 AI의 발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저 카페 창가에서 내가 목격한 순간, 노인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던 여성의 선택, 그리고 그것을 보며 내가 느낀 말할 수 없는 감동. 그것만큼은 영원히 인간의 것으로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벽한 계산이 아니라, 불완전한 우리가 서로를 향해 내미는 따스한 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손을 잡을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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