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흉내낼 수 없는 인간의 상호작용
-느낌, 접촉, 책임 그리고 대가에 관하여
인공지능은 이제 사람의 말투와 표정, 대화의 리듬까지 놀랍도록 정교하게 흉내 낸다. 위로의 문장을 고르고, 농담의 박자를 맞추고, 상대의 감정을 읽어 적절한 반응을 내놓는 일에서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교한 모방이 곧 대체를 뜻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상호작용 가운데에는 아무리 성능이 좋아져도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남아 있다. 그 경계는 대체로 정보가 오가는 자리가 아니라 존재가 오가는 자리, 곧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가를 실제로 내어주는 지점에 그어진다.
첫 번째 영역은 정서적 공감이다. 공감은 흔히 한 덩어리로 이야기되지만, 연구자들은 이를 상대의 상태를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과, 그 감정을 실제로 함께 느끼며 상대의 안녕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정서적·동기적 공감으로 나눈다. 루빈과 동료들의 2024년 연구는 인공지능이 인지적 공감은 그럴듯하게 재현하지만, 정서적 공감과 상대를 향한 진정한 관심은 구조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공감 표현이 위로가 되는 까닭은 그 안에 시간과 감정노동, 그리고 다른 곳이 아닌 바로 당신에게 쏟은 선택적 주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상담과 치료의 성과가 치료자의 공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임상 근거 역시,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정서적 연결이 단순한 정보 전달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세 번째 영역은 도덕적 책임과 상호 책무다. 텍사스 A&M 대학의 철학자 마틴 피터슨은 인공지능이 인간과 동일한 판단과 권고를 내놓을 수는 있어도, 그 판단에 이르는 인과의 역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은 자유의지를 갖지 않으므로 도덕적 행위자가 될 수 없고, 따라서 스스로 책임을 질 수도 없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개발자와 사용자에게 돌아간다. 관계란 서로에게 책임을 묻고,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감수하는 일이다. 언어 모델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과의 형식을 흉내 낼 수 있지만, 실제로 대가를 치르거나 그 무게를 짊어지지는 않는다. 잃을 것이 없는 존재는 진정한 의미에서 책임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 나아가 자기 파괴적인 선택을 만류하고 서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붙잡아 주는 상호적 책무 또한, 대가를 함께 감당하는 관계 안에서만 성립한다.
이 세 영역을 하나로 꿰는 열쇳말은 대가다. 인간의 상호작용이 진정성을 갖는 까닭은, 그것이 유한한 시간과 취약한 몸을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곁에 있어 주는 데에는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는 비용이 들고, 마음을 여는 데에는 상처받을 위험이 따른다. 반면 인공지능에게 모든 상호작용은 무한하며 사실상 무료다. 어떤 연구자들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모든 대화가 비용이 들지 않고 무제한인 존재에게서는, 오직 당신을 위해 시간을 냈다는 신호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함께 늙어 가고, 서로에게 상처받을 수 있으며,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나눈다는 유한성이야말로 인간적 유대의 바탕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인간을 돕고 대신하는 도구로서 더없이 유능한 조력자가 될 수 있지만, 함께 느끼고, 손을 맞잡고, 책임을 지고, 대가를 치르는 상호작용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온전히 성립한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이 영역을 알아보고 지켜 내는 안목이 더욱 중요해진다.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만이, 흉내 낼 수 있는 것을 지혜롭게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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