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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돌발 상황 대응 한계: 알파고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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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cleai 2025. 10. 1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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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돌발 상황 대응 한계: 알파고의 교훈

 

2016년 3월,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역사적 사건이었다. 수천 년 인간의 전유물이었던 바둑이라는 영역에서 기계가 인간 최고수를 압도한 것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 놀라운 성취 뒤편에는 인공지능의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알파고의 사례는 오히려 현재 인공지능이 돌발 상황을 예측하고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바둑은 겉보기에 무한에 가까운 복잡성을 지닌 게임이다. 19x19 바둑판 위에서 가능한 경우의 수는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바둑은 완벽하게 정의된 규칙 체계 안에서 작동한다. 돌은 교차점에만 놓을 수 있고, 착수 후에는 움직일 수 없으며, 상대의 돌을 에워싸면 따낼 수 있다는 명확한 규칙이 존재한다. 게임의 목표 역시 분명하다. 더 많은 집을 차지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알파고는 바로 이러한 완벽하게 정의된 환경에서 탁월한 성능을 발휘했다. 수백만 건의 기보를 학습하고, 자가 대국을 통해 최적의 수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알파고는 인간이 수천 년간 축적한 정석과 전략을 단시간에 습득했을 뿐 아니라,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수까지 창조해냈다.

 

그러나 알파고가 바둑에서 보여준 '지능'은 매우 특수한 종류의 지능이다. 이는 패턴 인식과 확률 계산에 기반한 최적화 능력이지, 진정한 의미의 이해나 추론이 아니다. 알파고는 바둑판의 형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어떤 수가 승률을 높이는지 계산할 뿐이다. 이는 마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여 가장 적합한 답을 찾아내는 것과 유사하다. 바둑이라는 닫힌 시스템 안에서 이러한 접근법은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바둑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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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계의 돌발 상황은 바둑과 달리 사전에 정의되지 않은 규칙, 예측 불가능한 변수, 그리고 모호한 목표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자동차를 생각해보자. 도로 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의 가짓수는 사실상 무한대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어린아이, 도로에 떨어진 정체 모를 물체, 예상치 못한 기상 변화, 다른 운전자의 돌발 행동 등 학습 데이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들이 바둑처럼 명확한 규칙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행자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었을 때, 그것이 의도적인 행동인지 실수인지, 아니면 다른 위험을 피하려는 것인지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알파고가 바둑판 위의 돌만 보고 판단했듯이, 현재의 인공지능은 센서가 감지한 데이터만으로 상황을 해석하려 한다. 하지만 인간의 의도, 사회적 맥락, 문화적 규범과 같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알파고의 4국에서 이세돌 9단이 두었던 78수, 이른바 '신의 한 수'는 인공지능의 또 다른 한계를 보여준다. 알파고는 그 수를 둘 확률을 만 분의 일 이하로 계산했다. 통계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수였지만, 그 수는 게임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알파고는 이후 혼란에 빠져 실수를 연발했고 결국 패배했다. 이는 인공지능이 학습 데이터의 분포를 벗어나는 극단적인 상황, 즉 '분포 밖 사례'에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둑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환경에서도 예상치 못한 창의적 수에 무너졌다면, 훨씬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 세계의 돌발 상황에서는 어떻겠는가.

 

인공지능이 돌발 상황을 예측하고 처리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반화 능력'의 부재에 있다. 알파고는 바둑을 둘 수 있지만, 장기나 체스를 두지 못한다. 각각의 게임에 대해 별도로 학습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의 게임에서 배운 전략적 사고를 다른 게임이나 실생활 문제 해결에 응용할 수 있지만, 현재의 인공지능은 특정 작업에 특화되어 있을 뿐 그 경험을 다른 영역으로 전이하는 능력이 제한적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방식의 본질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알파고는 수백만 개의 바둑 기보를 학습했지만, 그것은 데이터의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지 바둑의 본질이나 전략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돌발 상황 대응에는 단순한 패턴 인식을 넘어선 인과관계의 이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도로에 물웅덩이가 있을 때, 인간은 그것을 피해야 하는 이유를 안다. 물이 차량에 손상을 줄 수 있고, 미끄러질 위험이 있으며, 보행자에게 물이 튈 수 있다는 인과관계를 이해한다. 그러나 현재의 인공지능은 "물웅덩이를 피한다"는 패턴을 학습할 수 있지만, 왜 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부족하다. 이러한 이해의 부재는 새로운 상황에서 치명적이다. 만약 화재 현장에서 물웅덩이가 사람을 구하는 유일한 경로라면? 인간은 맥락을 이해하고 규칙을 깰 수 있지만, 학습된 패턴에 의존하는 인공지능은 유연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알파고는 또한 '상식'의 부재를 보여준다. 바둑에서는 상식이 필요 없다. 규칙만 알면 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명시적으로 가르쳐지지 않은 수많은 상식이 의사결정의 기반이 된다. 사람들이 횡단보도에서 멈추는 것, 신호등이 없어도 위험한 상황에서는 양보하는 것, 응급차량에 길을 내주는 것 등은 명확한 규칙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합의와 상식에 기반한다. 인공지능에게 이러한 모든 상식을 학습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은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상식을 체득하지만, 인공지능은 명시적으로 프로그래밍되거나 학습되지 않은 것은 알 수 없다.

 

알파고의 성공은 제한된 환경에서 특정 목표를 최적화하는 인공지능의 능력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인공지능의 한계를 드러냈다. 바둑판이라는 19x19의 격자 안에서는 신처럼 행동할 수 있지만, 그 격자를 벗어나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현실 세계는 명확한 경계가 없고, 규칙이 모호하며, 목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돌발 상황은 정의상 예측할 수 없고, 학습 데이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이다.

 

인공지능이 돌발 상황을 진정으로 예측하고 처리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히 더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키거나 더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상식을 갖추며, 맥락을 파악하고, 경험을 일반화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인공지능이 필요하다. 알파고가 바둑에서 보여준 것은 좁은 의미의 지능이었다. 돌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넓은 의미의 지능, 즉 일반 인공지능에 가까운 무언가가 필요할지 모른다.

 

결국 알파고의 승리와 한계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인공지능은 특정 영역에서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지만, 그것이 곧 모든 영역에서의 우월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둑판 위의 천재가 바둑판 밖에서는 무력할 수 있듯이, 현재의 인공지능은 정의된 환경에서는 탁월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현실 세계의 복잡성 앞에서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돌발 상황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패턴 인식을 넘어선,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인공지능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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